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있는지 일깨워 주는 글이기에..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있는지 일깨워 주는 글이기에..

─며루─── 13 4,850
오늘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있는지 일깨워 주는 글이기에..
책에있는글을 옮겨보았습니다..

점심식사후 차한잔하며 읽어보세요..
교정안봤으니 오타는 애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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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 3학년, 갖 피려는 꽃봉오리 시절 왕성한 젊음과 즐거움의 날개를 접고
맑은 날 벼락 같은 걷지 못하는 3급 장애인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974년 엄마의 배꼽줄을 튕기며
나도 정상인과 같이 10달 만에 태어났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하나를 낳았는데도 하나가 더 태어나 일란성쌍둥이,
그중 동생이 나다. 태어나면서부터 울지를 않아 엄마를 놀라게 했고.
난 약하게 태어나 잦은 병치레를 많이 하였다.

그후 국민학교 4학년 시절 부모님 사이에 욕설과 폭력 등 부부싸움이 잦아졌고,
급기야 엄마는 아빠의 고소로 감옥에 가게되고 결국 이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엄마가 감옥에 있을 때 1달에 한 번, 2달에 한 번 백구두에 차갑게 변한 아빠가 찾아와
생활비 만 원을 주고 가셨다.

외할머니가 가끔 와 주시기는 했지만 아빠가 무서워 그것조차도 자유롭지 못했다.
우리의 가정은 파산되고 거지처럼 변해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 담임 선생님은
무료로 우유급식을 시켜 주고 쌀을 걷고. 학용품을 걷어 우리에게 주시곤 하셨다.
점심시간이 되면 집으로 가 점심을 거르며 시간을 보냈고 집으로 가는 길에 50원 하는
빨간 캐첩을 바른 야채핫도그가 내 눈을 간지럽혔지만 잘 참아냈다.
1년이 지난 그 해 가을, 엄마는 같이 감옥에 간 새아빠와 초췌한 모습으로
우리와 외할머니를 번갈아 가며 안고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새아빠는 택시운전을, 엄마는 입술을 깨물고 새벽부터 나가 두부공장에서 일을 하셨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해도 벌이는 마땅치 않았는지 음식점에서 술을 팔기 시작했다.

우리와 할머니는 금촌에서 일산으로 이사를 해 교회 옆에 전세를 얻어 생활했고,
엄마는 새아빠와 가게에서 생활을 하셨다.
철이 없던 초등학교 시절이라 먹고싶고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가게로 달려가
엄마를 졸라대기도 했지만 엄마와 새아빠의 엄청난 노력으로 중학생이 되면서
21평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해 가족이 합치게 되었다.
형편이 조금은 좋아지면서 나는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고 무용을 하게 된 것도
우리 가족의 생활형편이 조금은 여유가 생겨서였던것 같다. 수업이 끝나면
매일 무용복이 땀으로 흠뻑 젖게 열심히 연습하는 날 담임선생님은 성적은
꾸짖지도 않으시고 무용으로 성공하라 하셨다.
그땐 그 말을 듣고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더욱 열심히 연습을 하였다.

그러나 불행은 서서히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졸업을 바로 앞둔 마지막 기말고사로 기억된다. 머리를 감고 거울앞에 앉았는데
찡 하는 작은 울림을 느꼈다.
갑작스런 구토. 호리호리한 내 체구에서 어쩜 그렇게 많은 오물이 쏟아지는지
병원 갈 형편이 안되 밤낮으로 방에만 누워있었고. 눈앞이 어지럽고 땅으로
 꺼저가는 느낌에 사경을 헤매다 깨어난 곳은 다름아닌 병원 중환자실.

"병명은 뇌졸증 소뇌운동기능상실, 사지마비증 왼쪽이 더 심함."

나의 슬픔은 고사하고 우선 머리를 스치는 전광석과 같은 자극은 고생하시는
 엄마에게 졸업하면 착한 딸이 되기를 그렇게도 원했는데. 그런 딸이못된다는
사실에 또한 그런 꿈을 지워야 한다는 것에 대한슬픔에 내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정말 장애아란 말인가? 아무 생각이나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충격 속에 빠져들었다.
쉼호흡을 했다. 울어도 보았다. 목을 조여도 보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장애에
대한 불신과 부저은 더욱 나를 힘들게 했고 더 심해졌다. 왜 내가 정말 일어설 수 없는
걸을 수 없는 특히나 평생 고생만 하시는 엄마에게 효도는 커녕 짐을 주는 딸 장애인이란
 말인가. 그럴리가 없지. 아니야 설마 등의 장애를 부정하고 싶고 의사의 진단이
 잘못된 것이라고 진단이 틀리기만을 바라는 마음에 부인해 보았지만...

마음대로 되지를 않아 머리를 잡아뜯으며 통곡했다.
이러한 내 모습에 슬픔과 초조. 갈등의 혼돈 속에 눈물 흘리는 엄마를 보면서
차라리 죽고 싶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대체 내가 장애인이라니 누구의 잘못이냐

엄마의 이혼에 충격을 받아서 그런것인가. 아니면 친아빠의 미움으로인해서인가
가난에 영양부족이란말인가.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열심히 학교에 다니는 나에게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하필이면 나에게 도대체 누구 때문인가 따지고 싶은 심정
정말로 미치겠다는 심정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의 표현 그것이 전부였다.

그후 새아빠와 이룬 가정마저도 많은 빛으로 파산에 이르러 우리형제는 뿔뿔이 흩어졌고.
나는 양지의 집에 수용되었다. 그러나 그렇게도 기다리던 엄마가 비록 지금도
장애인이지만 언젠가 걸어서 가끔이면 양지의집 아빠가 주시는 혹은 후원자님이
주시는 것으로 무스탕잠바를 사 드리려 모아온 쌈지돈을 어떻게 하라고 엄마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사망이라니.. 또 새아빠의 자살이라니.. 정말이지 믿기 어려운
사실에 다시 한번 가슴을 움켜쥐고 양지의 집 잔디를 파헤치며 통곡했다.

이제는 지쳤다. 더 이상 부정할 수도 없고 누구의 잘못인가를 가려낼 수도 없고
이것이 나의 운명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 야 하는 상황에서 우울증만
심해져 다시한번...

이제 죽자! 죽음으로 엄마에게 그리고 형제에게 짐을 덜어드리자. 효도하는 딸이
못된 분노와 장애로 인해 형제와 엄마에 대한 죄책감속에 심한 우울증에 빠져 내
인생을 포기하고 모든 것에 무관심 상태로 내 자신을 철저히 방치해 버리게 되면서
1년동안의 편지를 통해 물리치료과 대학교수인 양지의 집 성치도 아빠를 만나게 되었다.
아빠는 나에게 이야기했다.

"후경아 이제는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다오. 이렇게 24시간
경기에 앞도보지못하고 먹지도 못하는 동생들을 보면서 장애를 이해하고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고 다시 시작해 보자."

이제는 일단 장애인이라는 멍애를 받아들이고 양지의 집에서 아빠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 작은 바램이 있다면 모든 사람이 장애인의 슬픔을 아는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또 장애인이 누군가의
도움에 의해 살아가는 현실에 합당한 수용시설, 교육시설이 충분하다면 우리는
그렇게 실망하지 않을것이다. 특히나 이 시가 분노와 좌절이 많이 느껴지는 절망에
빠진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 새로운 용기와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후경 올림-

「엄마, 나도 걷고싶어요」中

-
장애라는거.. 정말 한순간에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찾아올지 모르는것이더군요.. 

Comments

맨실장
며루님 우리 잊 ㅔ 종요하지 
됫거든? -♪
움...... 
★쑤바™★
몸의 장애를 가진 저분들보다..
마음의 장애를 가진 우리같은 사람들이..
더더욱 부끄럽게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는 글이로군. 
명랑!
자신을 다른이와 비교하여 '불행하다' 또는 '행복하다' 라고 생각하는것은
"옳지않아!" ㅋ~
사람은 겸손해야하고 교만하지 말아야....

요한복음 9장에 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께
'이는 자기죄 때문인지 부모죄 때문인지'를 묻자,
(병은 죄 때문이란 시각 - 그럼 태어나면서 장애는 부모죄?)
"부모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으로 라고
하시며 9장 결론에 가서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죄가 그저 있느니라"며
장애가 없어서 더 죄와 가까움을 말씀...

나도 어쩌면 장애를 가질수도 있음에 '남의 일처럼' 생각지 않고
'난 얼마나 행복한가'라는 차원보다는
그들을 보고 '내가 더 겸손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다 보면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이 바르게 되지 않을까 생각 해 봅니다. 
한미소
올간만에 긴글을 짧은 시간에 후딱 읽어치워버린 날~~이네요
감사요~   
며루
예비장애인이라.. 맞는말인가 같아 정말 아찔하군요..
부모님이 몸 건강하게 낳아주신것만으로도 충분히 축복받은 삶이라 생각합니다.
건강할때 작은 봉사를베풀고 매순간을 감사해하며 열심히 살아야겠네요.. 
명랑!
편견이...장애인은 어떤 보험도 안들어줘요. emoticon_007emoticon_101 
일레인
밥먹구와서 읽어씀......... 
KENWOOD
예전엔 거리에서,,,장애인분들 보면,,,도와드리고 싶은 맘은 있는데,,,솔직히 못하겠더라구요,,,근데 어느날,,,울희정이가,,"아빠아빠,,,저아저씨 아픈거보다,,,힘센 아빠가,,,짐 들어줘,,," 얼마나 부끄러운 마음이 들던지,,,
그날 이후,,,도움이 필요할거 같은 분들 보면,,,쪼금이나마 도움을 준답니다,,,
앨리쓰님 말씀처럼,,,우린 모두 예비장애인일겁니다,,,내미는 작은손길에,,,그분들은 참 해맑게 웃어주신답니다,,,^^;; 
됫거든? -♪
미안하다.. 못읽겠따..... 
앨리쓰
며루님 말씀대루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게 삶이잖아요?
누가 그러더군녀...
우리는 모두 예비 장애인이라고...




그런데....

..차한잔 마시며 읽기엔 좀 기네요...ㅎㅎㅎ 
카키색날개
ㅇ ㅏ....맘아프다....... 
KENWOOD
음,,,밥먹고 읽으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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